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씨 몰살 (문단 편집) == 개요 == '왕씨 몰살'이란 조선 초에 일어난 일부 [[개성 왕씨]] 왕족들에 대한 몰살 사건이다. 태조 3년 [[순흥군]] 왕승, 정양군 왕우 일가와 여자, 방계를 제외하고 왕위에 가까운 남자 후손 '''135명'''이 삼척, 강화도, 거제도에서 제거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때 죽은 사람들까지 아울러 놓은 《개성 왕씨 대동보》에 의하면 '''150여 명'''이다. 제34대 공양왕 중심으로 직계 유력 남자 후손들만 제거한 후, 남은 왕씨들은 외가 성으로, 사성 개성 왕씨들은 원래 성씨로 되돌려서 왕씨만 아니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이 같은 조치로 태조 신성대왕 [[왕건]] 이래 잦은 사성 정책으로 불어난 개성 왕씨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기록이 많지 않아 왕씨 처분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정사(역사)|정사]]가 아닌 [[야사(역사)|야사]]에 의존해 왔다. 실록에 나오지 않는 내용도 다수 수록되어 있는 《[[승정원일기]]》를 포함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사료들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관계로 사료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국내 학계의 관심이 부족해서 많지 않은 [[논문]]들이 지엽적인 논의에 머물렀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중시하는 [[미국]]쪽에서 일률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에는 명확한 전개와 처분 규모에 대한 각종 추측이 횡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